다양한 국적의 여섯 쌍의 남녀, 그들의 '관계의 생로병사'

저자 서아

입력시간 : 2020-01-31 18:23:34 , 최종수정 : 2020-01-31 18:24:46, 오도현 기자


책 소개


 <Tinder.zip>은 서아 작가의 포토에세이다.

 책은 'Tinder(틴더)'라는 세계 1위 소셜데이팅 앱을 통해 만난 다양한 국적의 여섯 쌍의 남녀, 그들의 '관계의 생로병사'를 사진과 함께 엮었다.

 다음은 책에 수록된 소개 글이다.

 "다양한 의미에서 이 책은 저자와 저자의 친구들이 틴더로 알게 된 남자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관찰한 기록물일 수도 있고, 바쁜 일상 속에서 연애 감정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해준 그들에게 쓴 부치지 못할 편지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이상적인 인간관계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은 우리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서아 작가의 포토에세이 <Tinder.zip>은 부끄럽지 않을 자신의 욕망에 조금 더 충실하도록 자극을 주는, 그런 불쏘시개 같은 책을 찾는 남녀들에게 필요한 책이 될 것이다. 단, 19세 미만은 구독불가이다.



<출처: 오키로북스>



 저자 소개


 저자: 서아




목차


 - 프롤로그

 - L, 29세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변호사

 - M, 26세 수영선수가 되고 싶었던 자산관리사

 - K, 25세 무용수

 - R, 37세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던 프로그래머

 - P, 29세 슈퍼스타가 되고 싶었던 연극배우

 - S, 27세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던 대학원생

 - 에필로그




본문


 사람들이 이거 러브 스토리냐고 물었다. 안타깝게도 아니다. 감정적 상처의 기록 같은 사치품도 아니다. 좁은 의미에서 이 책은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자발적 의지로 사용한 'Tinder (이하 틴더)'라는 소셜데이팅 앱을 통해 생성된 '관계의 생로병사'가 담긴 책이다.


 불쏘시개라는 영문 의미를 지닌 틴더는 2012년에 개발되었다는데, 나는 2016년 독일에서 체류하던 시절 대학교 동기들과의 낮술 자리에서 처음 틴더를 소개받았다. 군사용 목적으로 개발된 GPS를 이용해서 이성을 찾는 앱이라는 친구의 설며에 적잖게 충격을 받았었다. 이 앱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오락실 게임을 연상케 했다. 상대방의 사진과 프로필을 보고 오른쪽 스와이프 LIKE 또는 왼쪽 스와이프 NOPE 로 스마트폰 화면을 쓸어내리며 호불호만 선택하도록 구성된 단순한 오락물 같았다. 상대를 탐색하는 옵션도 단 세 가지로 성별, 나이 범위, 상대와의 반경 거리뿐이었다. 이러한 앱의 하루 스와이프 횟수만 20억 건을 기록한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고백건대 나는 인연은 교통사고처럼 찾아온다는 말을 맹신해 오던 사람이었다. 즉, 애초에 내 선택권 밖의 일이라 여겼고, 무조건 갖춰 입고 나가서 특정한 상황에 놓여야만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다는 전통적인 사고에 갇혀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접촉사고처럼 이 앱을 만났고, 텅 빈 침대에 누워서든, 언제 어디서든 내 손으로 선택한 상대에게 마음껏 호감을 드러낼 수 있게 해준 이 기술 문명에 환호하던, 나의 순진무구한 첫날 밤을 쉽게 잊지는 못하겠다. 


 - 8페이지 중에서 -



 L의 침대에서 술 취한 아기처럼 잠들었던 그녀가 혼자 눈을 떴다. 새벽 5시 47분, 침실 천장에는 해먹처럼 매달린 천의 한가운데 쓰인 '옴 OM'이라는 그림 같은 문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입술을 열었다 닫으며 소리를 길게 내어보니 왠지 모르게 편안한 진동을 주는 이 소리가 L의 공간을 신성하게 채우고 있는 듯했다. 이 침대를 박차고 일어난 L은 분명 17분 전쯤에 자전거를 타고 헬스장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녀가 몇 달 정도 관찰한 L은 매일 오전 5시 반에 운동을 하러 가고, 벽돌처럼 쌓인 법률 문서마다 자를 대어 밑줄을 긋는가 하면, 출근 전에는 저녁에 먹을 스테이크용 고기를 생로즈메리와 함께 미리 숙성시켜두는 등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틴더에서 L의 존재를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무언가 남다른 성향을 가진 남자라고 생각했다. 서광이 비치는 숲을 배경으로 두툼한 터틀넥을 입고선 무표정의 사진과 초월주의 철학가인 소로우 H. D. THOREAU의 글을 인용한 그의 프로필은 육체미를 뽐내기만 하는 남자들을 지루해하던 그녀의 눈에 단연 돋보였던 것이다. 광고 회사에서 전투적으로 일을 하는 그녀도 소로우가 살았던 미국의 콩코드로 언젠가 배낭여행을 가는 게 꿈일 만큼 그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여자였다. L은 이러한 그녀와 메시지를 몇 번 주고받자마자 주저 없이 만남을 제안했고, 그녀도 적극적인 L의 태도에 처음부터 마음이 끌렸었다.


 자연스레 L과 금요일 밤을 보내는 사이로 발전했고, 서로의 세계를 점차 공유하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그가 자신의 인생을 실패작이라 평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일 아침 입는 양복은 그저 값비싼 코스튬일 뿐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알고 보니 그런 L은 어려서부터 고전 소설에 열광했고, 커서는 창작을 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필력과 안정적인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일찌감치 진로를 바꿨다고 했다. 곧 서른을 앞둔 L은 잦은 출장 속에 원하지 않는 일을 책임져야 하는 자신의 삶을 종종 지옥이라고도 표현했다. 그런 L을 내면 깊숙이 연민하는 그녀도 이혼이라는 풍파를 겪고 홀로 고향을 떠나온 탓에, 숱한 밤을 불면으로 뒤척이던 여자였다. 


 어쩌면 이 둘은 각자의 지옥을 견디게 해 줄 타락의 수단으로 틴더를 찾았었는지도 모르겠다. 함께 있을 때면 둘 다 지독한 일상은 입에 올리지 않았고,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하기만을 바랐다. L은 여름날 그녀와 뫼르소의 태양을 운운하며 농담을 하거나,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시를 읽는 시간이 즐겁다고 말했다. 그녀 또한 L의 손으로부터 유일하게 느껴지는 감각과 L의 동공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다 잠들기를 멈추고 싶지 않았다. 


 - 'L, 29세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변호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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