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날리듯 눈 내리는 밤에

<흩날리는 밤> 저자 김종완

입력시간 : 2020-01-31 15:05:39 , 최종수정 : 2020-01-31 15:06:14, 김미진 기자


책 소개


 <흩날리는 밤>은 김종완 작가의 단상집이다.

 다음은 책에 수록된 소개 글이다.

 「아침에 오렌지주스를 마시면 슬퍼질 것 같단 그녀의 말, 

 신호등 없는 건널목, 

 커피 잔 속에 조금 남겨둔 커피,

 흩날리듯 눈 내리는 밤.」



<출처: 다시서점>



저자 소개


 저자: 김종완




목차


 총 88페이지 




본문


 네? 내가 묻자 그들은 만약 소중한 누군가가 이렇게 힘들다고 말하면 어떤 말을 해주시겠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생각을 좀 하는 척하다가, 어디야? 라고 말하겠다고 했다. 그들은 거의 동시에 오, 하며 입을 동그랗게 했다. 그러고는 자기들은 무슨 단체에서 나왔는데 자살 예방 활동을 하는 중이라고 그들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들은 내게 인터뷰를 해도 괜찮으냐고 물었다. 나는 그러라고 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은 누구인가요?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준 적 있나요? 그들의 질문에 나는 이런저런 거짓말들을 했다. 그들은 멍하게 혼자 앉아있는 나, 내 얼굴을 보고 아마도 내가 조만간 한강 다리에 갈 것 같다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근처에 사무실이 있으니 상담을 받으러 오라고 연락처와 이름을 알려달라길래 멀리 지방 산다고 못 간다고 거짓말했다. 


 - 23페이지 중에서 -



 그녀는 냉장고에서 오렌지주스를 꺼냈고 한 잔 컵에 따랐다. '무엇을?' 그녀는 컵을 반쯤 채웠고 입술만을 적시듯 하며 천천히 오렌지주스를 마셨다. 어쩐지 입 안이 산뜻해졌다 느꼈다. 구내염이 있었고 혀를 움직일 때마다 인상을 구겼는데 이젠 사라진듯 괜찮아졌다. 그녀는 부드럽게 입 안에서 혀를 이리저리 움직여보고 무슨 생각을 해보려는 것처럼 볼을 우묵하게 했다. 오렌지(주스) 향이 났다. 

 선반 위에 놓인 탁상시계의 시간이 7시 20분...을 지난다. 그녀는 지금이 어떤 시간도 아닌 단지 '지금'일 뿐이라 여겼다. 

 그녀는 일찍 일어났다. 그녀도 알고 있다.


 - 45페이지 중에서 -



 나는 조수석에 앉아 강변북로를 따라 이어지는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창은 완전히 내려져 있었다. 바람이 불었고, 나는 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몸이 젖는다 생각했다. 서울의 야경은 너무 멋진데 나는 그리 멋있는 사람이 아니네, 라고도.

 시원해 좋았는데, 그만큼 답답했다. 


 나는 그 어디에도 살고 있지 않은 사람 같다.


 - 67페이지 중에서 -



 나는 내가 어디에도 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 하는 수 없이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기다리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디에도 가지 않으며, 나는 느리게 걸었다. 차가운 밤공기에 몸을 움츠리고.


 - 본문 중에서 -



 열차 안 사람들은 무심해 보인다. 무표정 속에 각자의 불안을 숨긴다. 내내 스마트폰 화면만 바라보고 있다가 창밖이 환해졌을 때, 잠시 고개를 들어 한강을 바라본다. 바라본 한강은 표정이 없다. 열차가 철교 위를 지날 때.


 - 본문 중에서 -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무뎌져 헛도는 나사가 된 것 같다고나 할까요, 요즘 그런 기분이 드네요.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은 일 년을 주기로 보았을 때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저의 '순환' 같은 것이어서 이맘 때쯤의 이런 무기력에는, 이제 익숙해져버렸어요.


 - 본문 중에서 -


 

 오늘 밤 눈이 내리고

 

 소리 없이 내리는 눈에

 세상은 고요


 눈을 감고 가만히

 너를 안고


 눈녹듯,

 말이 없어지는


 - 본문 중에서 -






Copyrights ⓒ 뮤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김미진기자 뉴스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