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 최인엽의 짧은 초상이자 여행기

<위로는 덤입니다> 저자 최인엽

입력시간 : 2020-01-31 00:46:32 , 최종수정 : 2020-01-31 00:47:59, 허상범 기자



책 소개


 <위로는 덤입니다>는 최인엽 작가의 에세이다.

 책은 25살 최인엽 작가의 짧은 초상이자 여행기이다. 

 다음은 책에 수록된 '저자의 한마디'이다.

 「책을 쓰는 일이 작문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일은 아닐 겁니다.

 누구나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고 사니까요.

 

 이야기는 진정 삶을 응원하고 위로하는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저를 통해 당신이, 당신을 통해 우리의 삶이 조금 더 풍성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상상만 해도 행복한 일입니다.」

 


<출처: 인디펍>



저자 소개


 저자: 최인엽


 낮이든 밤이든 산책하는 걸 좋아하고 소소한 일을 관찰하는 걸 취미로 삼습니다.

 이곳저곳의 이야기를 담아오는 오지랖은 특기라 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속이 덜 여물었고 그래서 철이 없기도 합니다.

 무엇이든 과하지 않게 표현하려 노력하고, 가급적 차분한 마음으로 지내려 하는 보통의 청년입니다. 

 참, 산책을 할 땐 주로 편의점표 옥수수수염차를 마십니다.




목차


 총 108페이지 




본문


 충돌적인 용기로 바뀔 수 있는 삶의 부분이 있다.

 

 가령, 해외라곤 나가본 적 없는 내가 첫 여행지를 '독일'이라는 나라로 정한 것도 객기 비슷한 용기에서 비롯한다. 그 당시 한참 듣고 있던 노래가 김장훈 가수의 '사노라면' 이었는데, 그는 특유의 거친 목소리로 이런 노랫말을 부른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새벽 1시, 이 가사가 마치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서 불쑥 독일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해버렸다. 최저가라 환불이 어렵다고 표기돼있던 것 같은데 그런 건 애초에 안중에도 없었다. 때마침 휴학도 했고 돈은 얼마 안 남았지만 '젊은데 뭐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단순한 마음으로 무작정 비행기를 탔다. 고등학생 때 수학여행으로 제주도 갈 때나 비행기를 타봤지, 인천공항에서 국제선을 타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내부로 들어가는 데 어찌나 신기하던지. 지나가는 사람에게 어디 가시냐고, 즐거운 여행되시라고 주절주절 떠들어대던 일이 지금도 풋풋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사전조사 하나 없이 갔으니 불편한 점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 나름대로 해결해가며 배운 것도 많았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도 받았고.


 만약, 내가 독일을 기점으로 혼자 여행 다니지 않았다면 책을 써볼 엄두는 내봤을까. 다녀온 후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메모를 남겨둔 것들이 이 책의 근간이 되니 과장된 표현도 아니라 생각한다. 여전히 홀로 서는 일에 익숙하지 않지만 전에 비해 두려움은 많이 사라졌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면, 스스로 이렇게 묻곤 한다.


 '할 수 있는 이유보다 못 할 이유가 뭐가 있는지 생각해보면,

 그러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물론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 환경이 다르기에 '이것은 대체로 옳다.' 라고 말 할 의도는 없다. 누군가에겐 이조차도 버거운 말이 될 수 있으니까. 어디까지나 내 경험에 한해 말하는 것뿐이니 오해 말기를.


 언제나 그렇듯, 선택은 개인의 몫.


 - '개개인의 용기' 중에서 -



 TV를 자주 보진 않지만 가끔은 좋은 다큐멘터리를 찾아서 보곤 한다. 어느 날은 월동(越冬)을 준비하는 인디언 부족의 모습을 보는데 그 광경이 꽤나 고단해보였다.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순간, 부족장의 말이 내 정신을 툭하고 튕겼다. 


 "겨울을 지낼 준비를 하며 저녁에는 불을 지피고, 

 집에 돌아와 잠을 잡니다. 우리 생활은 이렇습니다. 

 힘든 인생입니다. 그러나 쉬운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인생이 편하고 쉽게만 흘러간다면 마냥 좋기만 할까. 글쎄, 그렇게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허나 삶을 대하는 저들의 진중한 자세를 통해 요행을 바라지 않는 삶의 무게를 느낀다. 


 생(生)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아무에게나 그 엄중함을 깨닫게 해주진 않는 것 같다.


 - '힘든 인생입니다. 그러나 쉬운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중에서 -



 스물한 살까지, 술을 마시지 않는 원칙을 갖고 살았다. 이 원칙을 지키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아주 가끔, 다섯 번(?)도 되려나.

 

 술을 안 마시고자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친아버지의 취한 모습이 싫었기 때문인데. 나도 술을 마시면 저렇게 행동할 것 같았다. 공개적으로 우리 아버지를 망신시킬 작정이 아니라 중년 아저씨들이 취했을 때 드러나는 모습을 말하는 거다. (젊다고 취하면 점잖게 구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술을 자주 마시는 아버지가 연약해보이고 미웠다.


 근데, 그날따라 그런 아버지가 보고 싶더라. 


 신학교 규칙상 기숙사 내에서 음주하는 건 당연히 금기된 사항이다. 룸메이트 형이 고향으로 내려간 틈을 타, 새벽통금이 풀리자마자 순대국밥과 빨간 두꺼비가 그려진 술을 두 병 사왔다. 순대국밥은 아버지의 단골 안주였고, 술은 대충 그놈이 그놈 같아서 눈에 튀는 걸 사왔는데 난 그게 도수가 더 높은 건지 몰랐다.

 빨간 두꺼비가 그려진 소주를 머그잔에 술을 콸콸 부어놓고 연거푸 마셔댔다. 심지어 국밥의 순대는 익지도 않았더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강했는지 20분 채 안 돼서 가득 차있던 두 병을 빈병으로 만들어버렸다. 


 일어나보니 저녁 7시. 술을 마신 건 새벽 다섯 시 반이었는데. 방바닥을 보니 형형색색 세계지도가 하나 펼쳐져있었다. 용케도 2층 침대까지 기어 올라가 잠을 잤더라. 

 슬슬 방형도 올 때가 됐는데. 큰일 난 정도가 아니라 이건 무조건 기숙사 퇴사감이었다. 일단 방이라도 치워야지 싶어 신(神)이 들린 듯 청소를 해나갔다. 찌긋찌긋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다행히 그냥저냥 잘 넘어갔다.


 2015년 5월 17일, 나는 이 날을 기념일로 지정해두었다. 지금도 친아버지가 보고 싶은 날이면 그때를 떠올리며 그리움을 달래고, 지나간 나만의 추억에 피식하며 견뎌낸다. 


 왜 누군가를 바라는 그리움은 쉽게 닳지 않는 건지.


 - '빨간 두꺼비' 중에서 -



 어매, 어매

 오늘은 파리가 시집을 가는 날인가 보아

 온몸을 요로코롬 치장하고 나섰어

 어여쁜 새색시가 되었어

 

 - 창가에 앉아 제 얼굴을 비비는 파리를 바라보며


 - '새색시' 중에서 -



 숙소로 돌아와 일기를 쓰고 있는데 곧이어 두 명의 남녀가 들어왔다. 알뜰살뜰히 서로를 배려하고 챙기는 모습이 예뻤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니 라트비아에서 왔다고 했다. 


 약간 젊어보여서 결혼 안 한 커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고등학생때부터 만나 12년 동안 연애하고 결혼한 지는 올해로 5년째인 부부였다. 잠깐 아이들을 친정에 맡기고 왔는데 가끔 이런 식으로 둘이 여행을 다닌단다. 아주 예외적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흔한 경우도 아닌 것 같아 신기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사랑할 수 있어요?"

 

 그들은 서로를 수줍게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대단한 건 없어요.

 우리는 서로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거나 강요하지 않으려 해요.

 무엇보다 항상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항상 같이 하려는 게 중요해요."


 좋든 나쁘든 결국 '많은 순간'을 함께 해야 관계가 깊어진다는 걸,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 '라트비아 부부' 중에서 -






Copyrights ⓒ 뮤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허상범기자 뉴스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