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해 가정폭력을 휘두르던 아빠 몰래 쓴 지난날의 일기

<난 가끔 아빠를 죽이는 상상을 하곤 해> 저자 해열

입력시간 : 2020-01-29 20:55:47 , 최종수정 : 2020-01-29 20:55:47, 김미진 기자



책 소개


 <난 가끔 아빠를 죽이는 상상을 하곤 해>는 해열 작가의 에세이다.

 책은 술에 취해 가정폭력을 휘두르던 아빠 몰래 쓴 작가의 일기를 엮었다. 작가의 중고등학교 시절이 어땠는지, 그의 가족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그의 친구들은 아무도 모른다. 그는 자존심이 강했고, 가족의 중요성을 잘 알기에 누구에게도 아픔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고 한다.

 책에는 어떻게 하면 아빠를 죽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열네 살 소녀가 쓴 일기부터 부모님의 이혼 후 급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전신마취 수술을 하며 병상에서 쓴 일기를 비롯해 대학에서 다섯 편의 단편영화를 연출하며 남몰래 속앓이를 했던 흔적이 담긴 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재의 작가가 10년이 넘는 일기를 추려 에세이로 준비하는 과정 속 심경 변화를 담은 일기(2019년 10월까지의 일기)가 담겨있다. 

 작가는 말한다. 

 "그렇다고 제가 아빠를 죽도록 미워만 한건 아닙니다. 제가 아빠를 죽이는 상상을 했던 만큼이나 우리 가족이 평화로웠던 시간을 떠올리고 아빠가 엄마에게 처음 반했던 순간을 상상하며 마침내 영화감독이 된 딸의 영화를 검색하며 기사를 찾아 읽는 아빠의 모습을, 안 좋은 댓글마다 달려들어 싫어요를 누르는 아빠의 모습을 상상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실은 누구보다도 아빠가 이 책을 읽고 눈알이 빠지도록 울었으면 좋겠어요. 아빠는 제가 책을 낸 것도 모르지만요."

 해열 작가의 에세이 <난 가끔 아빠를 죽이는 상상을 하곤 해>는 독자들에게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줄 것이다. 



<출처: 인디펍>



저자 소개


 저자: 해열


 뭐든 일단 적고 보관하는 성격입니다. 영화과를 나왔지만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는 질문은 여전히 싫습니다. 빵과 책에 쓰는 돈은 하나도 안 아까워하고 주일에 교회 빠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목차


 0. 입구_프롤로그  10

 

 1. 난 가끔 아빠를 죽이는 상상을 하곤 해  15

 가정환경  15 / 가정방문  20 / 엘리베이터 소리  23 / 아빠가 모든 악의 근원이다  25 / 기도1  27 / 벌써 중3이라니 말도 안 돼  28 / 기도2  30 / 무뎌지는 게 싫다  31 / 안녕, 병신들  32 / 5년 뒤의 나에게  33 / 난 가끔 아빠를 죽이는 상상을 하곤 해  35 / 부모가 이혼을 하지 않아서 슬픈 아이도 있다  38 / 기도3  40 / 인간으로 태어났다 해서 다 인간인 것은 아니다  41 / 기도4  42 / 내가 쓴 글이 나를 구원하는 날이 오리  43 / 아빠가 우리를 찾아낼까 봐 걱정이다  47 / 이 또한 지나가리라  49 / 미래의 남편에게  51 / 미래에서 온 내가 지금의 나를 좀 위로해주면 좋겠어  54 / 그까짓 아버지 학교가 뭔데  57 / 다시 지옥으로  60 / 기도5  64 / 내가 나오는 영화를 극장에서  65 / 기도6  68 / 내 침대 밑 야구배트  69 / 기도7  72 


 2. 넘어지더라도 넘어진 채로 있지 말 것  73

 주말 부부  75 / 우울1  76 /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78 / 나도 어쩔 수 없는 관종인가  81 / 내가 생각했던 스무 살은 이렇지 않았다  83 / 들뢰즈  84 / 딸, 법정에 제출할 네 글이 필요할 것 같다  86 / 독립 기념일  93 / 아빠의 전화  95 / 진작 병원 갈걸  96 / 온전한 나로 살아내야지  97 / 입원  99 / 수술 잘짜를 잡아야 된다  100 / 약물 치료  102 / 퇴원  103 / 다시 입원  105 /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106 / 병수발 드는 며느리  109 / 혼자 보는 일기장인데도  112 / 참 나란 여자도 단순하다  114 / 수정이 언니랑 이래언니 보고 싶다  115 / 수술 2일차  117 / 모순적인 마음  120 


 3.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도 향을 묻힌다  121

 드디어 이혼  123 / 병원 생활이 그립다  125 / 아빠에게 반격하는 어린 소녀  126 / 주님, 이건가요?  127 / 집시처럼  129 / 시계 태엽 오렌지  131 / 가면들  133 / 평생  136 / 세상은 원래 그런 거니까  138 / 기분에 따라 변하는 성격  141 / 흐르는 물  143 / 생애 첫 영화제 초청  145 / 역시 나라는 여자, 아직은 재밌군  147 / 아무것도 안 해서 받는 스트레스가 작업할 때의 스트레스보다 심하다  149 / 비가 내린다 살아야겠다  151 / 나는 빈센트만 편식한다  153 / 나는 나랑 친하게 지내는 게 제일 어렵다  156 / 다시 새로 인생을 살고 싶다  157 / 어디 힘들다고 징징거리나  159 / 이불 밖은 위험해  161 / 내 영화를 보던지 내가 쓴 책을 읽던지  163 / 혼자이긴 싫은데 혼자 있고 싶다  165 / 용서해주세요 잘못했습니다  166 / 요즘 같은 날엔 응당 밖으로 나가 줘야 한다  168 / 나는 내가 빨리 죽을 것 같다  170


 4.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천국은 없다  171 

 흐르는 내는 조급해하지 않는다  173 / 쇼코의 미소  174 /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176 / 길티 플레져  178 / 매년 유서를 적을 것  180 / 미치도록 닮고 싶다  182 / 남의 떡  184 / 나는 너 없어도 영화감독이 될 거다  186 / 강박  190 / 나는 내가 싫다  192 / 외장하드 싱크홀  193 / 마침내 승리한 사람  195 / 무던한 24  197 / 결국 스스로의 과제  199 / 써 내려가는 것  121 / 어떻게 일기 쓸 정신이 있냐?  204 / 자전적 소설  206 / 이게 내 전부는 아니야  207 / 당부  209 / 우울2  212 / 평생을 미루고 피해 살고 싶다  214 / 디어 마이 러블리 에너미  216 / 에어컨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218 / 자의식  220 / 이 중력에서 벗어나고 싶다  222 / 영화를 미치도록 찍고 싶다  224 / 내 일부  226 


 5. 어둠까지 밝히려면 그만큼 더 불타올라야한다  229 

 이너 뷰티  231 / 나는 누구일까  232 / 나는 누구인가  233 / 사랑해요, 김애란  239 / 이유모를 갈망  241 / 생애 마지막 영화  243 / 좋은 사람도 좋은 사람 곁에만 머물고 싶다  245 / 쓰고 기록하는 삶  247 / 단지 다음 배역을 기다리는 것  249 / 식충  251 / 내가 해야 할 몫  253 / 에세이를 써야겠다  255 / 증명해야 할 때  256 / 10년 치 일기장  258 / 더 빨리 전혜린을 알았더라면  260 / 독립 출판 워크샵  261 / 괜히 말했다  263 / 왜 그랬어  265 / 난 가끔 책방에서 북 콘서트를 하는 상상을 하곤 해  267 / 기도8  269 / 나는 내가 진짜로 책이 될 줄 몰랐다  271 / 나는 아빠 손을 잡고 결혼식에 입장하게 될까?  273 / 단 하나의 원형만 존재할 뿐  274 / 나 진짜 별로다  276 / 그러니 나를 너무 나무라진 마시길  278 


 6.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할게요_에필로그  283

 나비 한 마리가 봄을 몰고 오듯이  285 /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할게요  290




본문


 제목에 나와 있다시피 이 책은 '내가 어떻게 아빠를 죽여 왔는가'에 대한 책이다. 아, 물론 아빠는 (당연히) 살아계신다.


 어릴 적부터 무언가를 기록하고,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일단 쓰면 보관했다. 그리고 힘든 일을 남에게 잘 털어놓지 못하는 나느 아픈 감정을 일기장에 옮겨 적는 것으로 당시 머리에 찬 열을 가라앉히곤 했다.


 우연한 계기로 2008년부터 모아둔 10년의 일기장을 정독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지 않아 여태 멈춰있는 종이 안에는 집에 들어가기 싫어 아파트 주차장을 걸으며 아빠를 죽이는 상상을 하는 어린 내가 있었다. 일기장은 온통 새카맸고 읽는 내내 눈물이 질질 났다. 


 대학에 가 영화를 전공하면서 몇 편의 단편영화를 찍었다. 그때마다 징하게도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죽도록 미워했으면서 기어이 싫은 기억을 떠올리며 영화를 찍었다. 당시엔 그런 내가 이해가 안 갔다. 어쩔 수 없는 병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땐 누구도 이것이 치유의 과정이라 말해주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아무도 내가 내 상처로 영화를 찍는 줄 몰랐으니.


 영화로는 모자랐는지 아빠 얘기로 이렇게 책까지 내게 되었다. 아직 고인 응어리가 남아 있나 보다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아빠를 적어 없애(?)버려야 내 안에서 더는 썩지 않고 굳은살이 될 거란 것도 안다. 비록 이 책이 내 마지막 치유의 과정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나는 자라고 있고, 나의 성장이 나쁘지만은 않다.


 힘든 시기에 쓴 일기인 만큼 이 책에는 내 영혼의 단면이 스며들어있다. 그래서 더더욱 빵을 굽는 마음으로, 애타고 조심스럽게 담아냈다. 하지만 지극히 사적인 공간을 공개하려니 괜히 의식하게 되고 책 한 권으로 나라는 사람이 판단될까 조심스럽지만, 미화시키고 싶지 않아 최대한 날 것 그대로 옮겨 담았으니 부디 읽다 체하는 사람이 없길 바란다.


 책이 완성되기까지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 분들께 가장 큰 감사를 표한다. 또한 글이 책이 되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신 '부산 지역 출판 워크숍 B-Lab'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표한다. 먼저 글을 읽고 격려해준 나의 테오 반 고흐에게도 계속해서 나의 첫 번째 관객이 되어 달라 감히 적어본다. 마지막으로 당시의 감정을 쓰고 모아둔 나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빵을 사주기로 한다. 


 더불어 지난 시간을 기록하고 또 그 기록을 다시 꺼내어 보는 것 만큼 의미 있고 재밌는 경험이 또 있을까 싶어 일단 쓴다.


 - '0. 입구_프롤로그' 중에서 -


 

 2008. 3. XX

 

 우리 가족은 엄마, 아빠, 나, 여동생 리아(-1), 남동생 웅이(-7) 이렇게 다섯 명이다. 아빠는 증권회사 지점장이다. 돈도 잘 버는 거 같다. 올 초에 큰 평수 아파트로 이사도 했다. 가구도 새 거로 바꾸고 냉장고랑 세탁기도 바꿨다. 방도 4개라서 각자 자기 방을 쓴다. 내 방도 엄청 크다. 

 이사를 하고 한동안은 아빠가 일찍 퇴근해서 우리랑 같이 저녁 먹고 웅이랑 놀아주고 그랬는데 요새 좀 이상하다. 엄마 아빠 분위기가 별로 안 좋다. 평화로워지나 싶었는데 다시 공기가 냉랭하다. 


 초등학교 5학년 여름, 나는 아빠가 엄마를 죽이려는 걸 봤다. 그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다. 아빠가 어떤 식으로 엄마를 대하는지 몰랐다. 나에게 비친 모습은 화목했으니까.

 그런데 2년 전 여름, 자다가 엄마의 몸부림이 심해 깨어나 보니 술에 취한 아빠가 엄마 위에 올라타서 죽어라 엄마 목을 넥타이로 조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나와 동생이 깰까 봐 차마 소리는 지르지 못하고 몸부림만 친 것 같다. 영문도 모른 채 깨어난 나는 정말로 엄마를 죽일 것만 같은 아빠의 눈빛과 말투가 무서워서 아빠를 붙잡고 펑펑 울었다. 제말 하지말라고, 엄마한테 그러지 말라고.

 그때 난 처음 알았다. 술에 취한 아빠가 엄마에게 폭언과 폭행을 서슴지 않고 행사한다는 사실을. 다음날, 엄마와 동생들과 함께 작은 할아버지 댁으로 짐을 싸 도망갔다. 피신을 간 것이다. 그렇게 작은 할아버지 댁에 숨어서 여름 방학을 지내게 되었다. 


 여름 내도록 음식을 먹으면 토하고 잠을 자면 아빠가 달려들어 엄마를 죽이고 나까지 죽이는 악몽에 시달렸다. 악몽 꾸는 게 무서워 자지 않고 버티다 아침이 되어서 겨우 잠이 들곤 했다. 아빠가 갑자기 들이닥쳐서 엄마를 때릴 것 같아 하루하루가 괴로웠다. 

 여름방학이 끝날 때쯤 아빠가 우리가 지내는 할아버지 댁으로 왔다. 미안하다고 눈물 흘리며 나와 엄마에게 용서를 구하는 아빠의 모습에 나도 따라 눈물이 흘렀다. 절대 용서 못 한다고 하루에도 몇십 번을 생각했는데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며 각서까지 쓰는 아빠의 모습에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들과) 우리는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그 이후로 오늘까지 2년 동안 별 탈 없이 지냈다. 동생들은 영문을 모르니 할아버지 댁에서 방학을 보낸 정도로 끝났지만 난 다르다. 그 전처럼 아빠를 대해도 여전히 어딘가 불편하다. 특히나 요즘처럼 다시 분위기가 냉랭해질 때면. 냉랭했다 풀어지기를 반복했지만 이번은 좀 다르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 요즘은 매일 매일 기도한다. 이 냉랭함이 얼른 지나가게 해달라고. 그런데 내 기도가 약한 거 같다. 예전엔 기도 며칠하면 진짜 다시 풀리곤 했는데 요즘은 안 그렇다. 그래서 더 불안하다. 걱정이다.


 - '가정환경' 중에서 -



 2008. 05. XX

 

 엄마가 목사님이 가정방문을 오시니 잠깐 J네 집에 가서 놀다 오라고 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아빠는 안 좋은 분위기가 오래간다 싶으면 목사님께 가정 상담을 받는다. 그후엔 다시 얼마간의 평화가 찾아온다. 아빠는 술을 먹지 않고 집으로 곧장 퇴근하고 우린 다 함께 엄마가 깎아 주는 과일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것이다. 


 엄마의 말에 옆 동네 사는 J네 집으로 향했다. J의 방에는 아라시의 사진이 많이 붙어있다. 나는 본래 연예인에 관심을 두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J가 아라시에 대해 열성적으로 얘기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J는 아라시에서 일본으로 여행 갔다 온 얘기로 넘어갔다. J네는 일본으로 자주 가는 듯했다. 아무래도 가족 전체가 일본을 좋아하는 것 같다. 옷만 봐도 그렇다. J는 유니클로 옷만 입는다.


 - '가정방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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